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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시론 2015 하반기 새 필진 참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09-23 (수) 09:13 조회 : 313
 

법보시론 2015 하반기 새 필진

재마 스님·장재진 교수·묘장 스님·고용석 대표

법보신문 | webmaster@beopbo.com
승인 2015.06.29 17:04:01





재마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노동위원. 중앙승가대학교 불교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노동자명상과 노동자템플스테이 지도법사 △안양소년원 정심여자정보산업학교 지도법사 △서울대병원 완화의료병동 영적 돌봄 활동 △사무량심 함양을 위한 뫔명상(SMM) 진행.

장재진 교수 △동명대 불교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국립 한국해양대 국제지역학 박사 △한국콘텐츠학회 편집위원 △한국불교학회 이사 △한국인도학회 정회원 △동북아문화학회 회원 △동아시아 일본학회 이사.

묘장 스님 △조계종 사회국장 역임 △금오재가노인지원서비스 센터장 △인천국제공항 경찰대 경승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구미 도리사 주지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 상임이사.

고용석 대표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대표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2005년 생명사랑 채식실천협회 발족 △지구온난화 비상협의회 대표와 식생활교육 부산 네트워크 공동대표 역임 △국제 채식연합회(IVU)를 대표해 세계 NGO대회와 유엔회의 활동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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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상징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2015년 07월 20일 (월) 13:12:48 고용석 directcontact@hanmail.net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피할 수 없는 삶의 전제조건이다. 힌두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보면 영광의 얼굴이란 뜻의 키르티무카를 발견한다. 배가 고파 자신을 차례로 먹어 올라가 얼굴 하나만 덩그렇게 남은 이 이미지는 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생명을 상징한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신이나 부처를 예배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먼 옛날에도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아야 하는 엄정한 현실을 의식하는 인간의 마음이 크게 불편하고 두려웠나 보다. 현대의 대표적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과 삶의 현실을 화해시키는 것이 모든 신화의 기본구조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고민이 집단적으로 사라져 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첫째, 단일경작은 자연과 종의 다양성을 완전히 무시한다. 오늘날 3000개의 종 가운데 단지  쌀, 밀, 콩, 옥수수 4종만이 주작물이다. 대량생산된 곡물은 공장식 축산과 공장식 양식을 확장한다. 곡물과 마찬가지로 양식 물고기 역시 사람보다는 가축의 먹이로 대부분 투입된다. 생산된 곡물과 고기는 수익의 극대화를 위해 가공식품산업을 확장한다. 식품구조의 악순환은 비만을 포함, 환경파괴, 경제왜곡과 자원고갈 같은 재앙을 가져왔다. 공장식 사육, 단일경작, 유전자조작, 정크푸드 등 생명이 조작되고 상품화되는 현실과 비교할 때 신화 속 인간의 마음은 지극히 순수하고 우주적이다.


둘째, 불교를 비롯해 영적 전통에서 아직도 살아있는 음식의 경건함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음식을 의식적으로 먹으며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을 일치시키도록 해야 한다. 매일의 식사가 생명을 축소하고 상품화하는 훈련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햄이나 치즈를 먹으면서 ‘이 돼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이 소는 어땠을까?’ 묻는다면 과연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일까. 그리고 음식은 내면의 부처께 드리는 것이지 내가 먹는 것이 아니다. 정신이 깨어나는 약으로 삼으라는 불교의 오관게와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음식은 우주가 주는 선물이고 음식을 먹는 것은 우주적 생명에 접속하는 일종의 명상행위이다.

셋째, 음식공양을 통해 업장을 나누는 백중의 유래에서 보듯 음식은 모든 것을 연결한다. 실타래처럼 세상이 복잡해도 음식을 따라가면 전체적 윤곽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마음과 치유의 근원과도 연결된다. 이것이 음식의 잠재력이다. 음식은 공동체와 인격을 디자인하는 출발점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문명이 이 잠재력을 파괴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기후변화 환경파괴로 사라져갔고 현대문명도 그 기로에 서있다. 어느 문명도 이 음식의 잠재력을 건설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세월호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가 요동과 격변의 와중에서 얼마나 방심 않고 최소한 준비되어야 하는가를 시사한다. 우발성은 피할 수 없고 밤이 되어야 올빼미가 울듯 원인분석은 항상 사태를 겪고 나서야 가능한 법이다. 사람들은 그 원인으로 잘못된 상황판단, 직업윤리의 상실, 관료주의 공공성 부족 등을 애기한다. 물론 정파적 비난도 난무하다. 복잡계 물리학은 사태의 특정 원인 보다는 사태를 발생케 하는 배경 즉, 사회 뒤로 숨어있는 조직화와 패턴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모든 패턴은 집단적 성질을 띠고 임계상태에서는 모래알 하나조차 큰 변화를 촉발한다. 터질게 터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임금이 가뭄이나 재난에 자신의 부덕을 성찰하듯 우리 모두 스스로의 태도, 행동, 생각을 새롭게 하고 깨어있어야 한다.

현재 인류는 새로운 차원의 패턴과 인식을 모색해가고 있다. 모든 생명은 신성하며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생명의 그물을 찢어놓는다면 그 덫은 곧 우리의 존재자체에 구멍을 뚫어놓는 짓이 된다는 인식이다. 음식을 선택하는 인식의 질 특히 밥상에서의 생명존중은 이러한 인식을 심화하고 확대하며 널리 전파하는 강력한 진원지가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신화와 상징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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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위의 진보주의자들
2015년 08월 25일 (화) 11:45:48 고용석 directcontact@hanmail.net

인도사원이나 불교사찰에 가면 쌍어문양을 발견한다. 쌍어는 변하는 가운데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는 과정을 상징한다. 컵의 물이나 대양의 물은 다르지 않다. 단지 컵, 즉 몸과 마음이란 조건이 무한의식을 제한할 뿐이다. 고대 탄트라체계에 따르면 쌍어는 무한의식과 합일하는 내면의 에너지 통로� 말한다. 그 통로를 통해 생명에 의한, 생명을 위한, 생명의 약동이 솟구쳐 오른다.

우리 사회가 요즘처럼 매 이슈마다 보수 진보의 시각이 극명하게 갈린 적이 있을까 싶다. 사람은 비슷한데 무엇이 보수이고 진보인지 가늠하는 기준도 모호하다. 나라마다 한 이슈가 진보라면  동일한 이슈가 다른 나라에서는 보수인 경우도 허다하다. 진보는 꼭 거창한 정치적 방식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진보란 여럿에서 하나를 보는 마음이고 그 하나가 드러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진보란 항상 새로움이다.

19세기 미국의 르네상스를 열고 정신적 독립을 가져온 진보적 지식인들이 있다. 오늘날 생태주의와 시민운동은 그들에게서 시작된다. 그 대표적 인물이 에머슨과 소로다. 그들에 따르면 사회는 결코 진보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서로 보상하기 때문이다. 예로 새로운 기술을 얻은 대신 오래된 야성을 잃는다. 그러나 밀물과 썰물, 표면의 파도 심연에는 우주적 생명이 존재한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존재고 진정한 진보란 생명의 자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자연은 생명의 상징이다. 그들은 자연이 비추는 거울 속에서 신성, 우주적 생명을 발견한다. 시민불복종도 생태주의도 이들에겐 우주적 생명의 노래고 그 과정일 뿐이다.

간디는 비폭력이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다. 그에게 진리는 신이고 우주적 생명이다. 죽는 순간까지 모든 존재를 섬기며 모든 존재 속에서 신을 발견하려 한다. 심지어 자신을 저격한 사람을 바라보고도 평온하게 신의 이름을 부르고 죽는다. 한 생명을 해하는 것은 모든 생명을 해하는 것이다. 간디는 비폭력이 인간 사회 정치 등 모든 관계의 기초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진리파지 운동을 전개한다. 그에게 진보는 몸과 사회의 일치뿐만 아니라 우주적 공공성까지 담보한다.

슈바이처는 세계대전을 통해 문화란 결국 세계관임을 통찰한다. 서구사회가 세계와 삶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가졌음에도 몰락한 것은 외부에서 수동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근본적 사고가 없는 세계관은 결코 내면화되고 윤리적으로 실천되지 못한다. 그 문화는 아류일 수밖에 없다. 생명외경은 그 자체가 윤리적 세계 긍정이고 삶의 긍정이다. 슈바이처는 생명외경에 기초한 문화재건을 노래한다. 상대의 생명의지 속에서 자신의 생명의지를 체험하고 행동을 통해 무한한 생명의지에 내맡기게 된다. 그에게 진보란 우리의 삶과 세계에서 마주치는 생명의지를 어떻게 대하느냐이다.

이들의 삶과 사상은 오늘날까지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새로운 시대언어로 번역된다. 이들은 생명체에 대한 연민에 기초한  긍정적 혁명의 필요성을 이해한 진보적 선구자들이다. 동시에 음식과 관련한 우리의 태도와 관습에 주의를 강조한 밥상위의 진보주의자들이다. 만약 오늘 이 순간 다른 행성에서 지구를 탐사한다면 가장 중대하고 인상적인 사건을 무엇이라 볼까?

하루 수십억의 동물들이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 사실을 꼽을 것이다. 매초 1200평의 열대우림이 사라지고 10억 명은 배고파 굶어죽고 10억 명은 배불러 아파죽는 등 그 파괴적 후유증은 인간사회부터 심해에 이르기까지 생태계전반에 걸쳐있다. 그것도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의 이름으로 제도적으로 자행된다.

이것이 과연 매일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테러리즘이나 정치적 이슈보다 덜 중요한 일일까. 지금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하는 일상의 고민이다. 현대의 비건(완전채식)운동은 모든 생명을 향한 자비심과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한 마음살피기에 기초한다. 외적으로 비건이라 부르지만 사실 상호연관성에 대한 자각의 표현일 뿐이다.

고용석 생명사랑 채식 실천협회 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307호 / 2015년 8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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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성은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2015년 09월 21일 (월) 11:15:49 고용석 directcontact@hanmail.net

기원전 1800~800년 동안 유목민 아리안 족이 남하하여 인도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한다. 육식을 워낙 탐닉하다 보니 넘쳐난 수요는 고기공급을 강제하고 토지를 비롯한 생태계는 급속히 황폐화된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반목축에서 집약농업으로 전환한다. 농민들의 분노가 들끓고 상대岵막� 채식을 강조한 불교의 등장은 폭발적 인기를 얻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아리안 족은 힌두교에 아힘사(비폭력)를 삽입한다. 소를 도살하는 희생제를 포기하고 채식을 강조할 뿐 아니라 심지어 암소숭배 사상까지 출현한다.

저명한 문화인류학자 마빈해리스의 주장이다. 생태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문화적 전통과 식습관이 변화되는 역사적 사례의 하나이다. 그는 모든 문화의 수수께끼는 생태적 적응과 같은 나름의 합리성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지만 오늘날 지구생태계와 비교하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엔은 2006년 ‘가축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를 낸다. 축산업이 삼림파괴와 지구온난화, 대기와 수질오염, 토양악화와 물 부족 그리고 생물다양성 등 오늘날 가장 심각한 환경문제들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발표한다. 그리고 이 상황을 해결하고자 시급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후 유엔은 각종 보고서를 통해 축산업이 기후변화와 기아, 각종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행위자라고 맹비난한다. 그러나 채식이나 육류소비 자체를 줄이자는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수년이 더 지나야 비로소 유엔은 채식위주의 식단전환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대체가 가능한 화석연료와 달리 인간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실제 정책으로 반영되기에는 요원하다. 도대체 왜일까?

하나, 육식산업은 제도 중심에 단단히 뿌리내린 상태라 웬만큼 반기를 들지 않고서는 기세를 누그러뜨리기가 어렵다. 둘, 가축은 전 세계 13억 사람들에게 생계를 제공하는 정치 사회적 문제이다. 셋, 동물성 단백질이 건강뿐만 아니라 부와 성공의 상징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넷, 환경과 소비자단체들도 정책의 실패나 기업의 욕심을 비판하는 데는 발빠르지만 문제의 원인인 자신과 소비자에 대해서는 비판을 자제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 이유가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슈마허는 현대사회의 아주 치명적 오류로서 생산만이 구세주라는 환상을 꼽는다. 자연과 인간은 분리되어 있다는 사고방식 즉 인간중심의 세계관은 소득과 자본의 구분에 실패한다. 자연과 환경은 무한하고 공짜라며 소득으로만 생각하지 환경파괴가 자기자본을 잠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가격도 환경비용을 반영하지 못한다. 햄버거 하나에 이 비용을 보수적으로 반영해도 3만원이 넘는다.

모든 것을 생산을 늘리거나 기술로 해결하려하지 생산에 맞춰 소비하고 삶의 질을 고려하는 쪽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적 식량위기도 마찬가지이다. GMO(유전자변형식품)를 확대해 공급을 늘리려고 하지 식량수요를 특히 육류소비(세계 식량의 40%가 가축사료용)를 대폭 줄이고 지역식량을 강화하는 등의 근본적인 전환은 외면한다.

소비가 행복의 척도라는 인식이 깊게 뿌리내려 소비는 글로벌 사회의 집단의례이자 지배적 문화 패러다임으로 자리했다. 생명의 상품화는 물론 인간과 종교마저 소비대상이 되고 성장 없는 번영을 꿈꾸는 것조차 힘겨울 지경이다. 나는 소비지상주의의 정점에 오늘날 육식관행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파괴적 생산체계의 상징이기도 하다(세계농지의 80%와 물의 70%가 축산용).

인류학에 따르면 음식은 근본적이고도 무의식 차원에서 문화적 가치와 패러다임에 참여한다. 또한 일상의 경제와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표명한다. 석학들은 어찌하던 인류 문명이 이번 세대에 유쾌한 방법이던 불유쾌한 방법이던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의 원인이 된 사고방식으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지속가능성은 사실상 사고방식의 문제이다. 채식으로의 전환은 음식을 넘어 사고방식 즉 문화의 전환이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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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에 이름 붙이기
2015년 10월 19일 (월) 13:31:29 고용석 directcontact@hanmail.net

최근 국제적 베스트셀러 ‘월드피스 다이어트’의 저자 월터틀 박사와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의 저자 메릴린조이 교수가 잇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두 사람의 연구는 그 방법상 차이가 있지만 공통점이 많다. 전쟁, 여성차별, 노예제, 생태계 파괴 등 폭력적 가치와 신념의 뿌리에 목축문화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함을 밝히고 육식이 왜 우리 문화의 최대 그림자인가를 설명한다. 먼저 월터틀 박사는 1984년 송광사 하안거에 참석하여 비건 채식이 고대 아힘사(비폭력)적 삶의 연속이라는 영감을 얻는다. 그는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목축혁명을 소개한다. 이 혁명은 2000~3000년에 걸쳐 진행된 인류 역사상 가장 느리고 강력한 혁명이다.

1만 년 전에 문명의 발생지인 현재의 이라크 지역에서 인류는 최초로 양을 가축화하기 시작했고 염소, 소, 말 등이 차례로 가축화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신성하고 경외의 대상으로 여겨왔던 생명체는 오랜 기간을 통해 사물-그것으로 축소되기 시작한다. 특히 암컷이 많은 젖과 생식에 관련되다보니 먼저 축소되고 모든 가축이 그 뒤를 따른다. 야생동물조차 가축을 노리는 유해동물로 축소된다. 가축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고 인간도 덩달아 축소된다. 암컷과 새끼가 먼저 축소되듯 특히 여성과 아동이 빠르게 축소된다.

3000년 전 인류최초의 역사적 기록물에는 공통적으로 억압적 가부장제와 사유재산, 부와 자본으로 대표되는 지배계급이 등장한다. 자본이란 단어는 소와 양의 머리를 뜻하는 라틴어 ‘카파타’에서 유래한다. 여기서 인류사회에 2가지 제도가 잇달아 발생되는데 하나는 전쟁이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전쟁을 가리키는 ‘가비아’는 더 많은 소를 가지려는 욕망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노예화다. 전쟁에 승리한 자는 상대편의 가축을 소유하고 사람들을 노예로 삼는다. 이렇듯 가축화가 가져온 축소와 환원주의 혁명은 전 세계로 퍼져 현재 인류사회의 주류로 자리한 지배적 위계구조를 낳고 오늘날까지 진행 중이다. 근대 자본주의와 현대사회의 경제적 토대 및 심리적 기틀도 목축문화에 근간한다.

반면 멜라니조이 교수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을까’ 에서 보듯 반려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햄버거를 먹는 인간의 모순적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고찰한다. 어떤 고기는 살아있는 모습이 떠올라 메스꺼워하고 어떤 고기는 거리낌 없이 먹는 보이지 않는 신념체계를 육식주의라 이름하고 그 폭력성을 밝힌다. 먼저 육식주의를 정당화하는 3가지 신화를 얘기한다. 육식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당화는 노예제와 여성차별 등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이 신화는 법과 언론, 교육, 정부, 의료계 등 모든 제도를 통해 내면화되고 심지어 우리의 인식까지 왜곡한다. 본연의 공감과 자비를 마비시켜 인식을 조작함으로써 생명을 사물과 추상으로 보게 한다. 사람들은 육식주의라는 렌즈를 끼고 세상을 보고 인식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연구와 통찰은 결국 음식을 선택하는 내면의 힘으로 직결된다. 이는 차단된 의식과 공감을 온전하게 원상태로 되돌리는 혁명적 행위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후변화를 막고 지구환경과 동물의 고통을 줄이며 사회적 정의를 위해서라도 올바른 음식선택이 필요하다. 채식이 의식적인 선택인 반면 사람들은 육식을 선택임에도 질서에 따른 당연한 것으로, 거기서 오는 자연스러움을 마치 자신의 선택인양 착각한다. 일종의 매트릭스인 셈이다. 매트릭스로부터의 탈출은 목축문화, 육식주의 같이 먼저 이름 붙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는 자각을 통해 우리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이 있고서야 가부장주의의 폭력성을 인식하듯 나중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신념체계가 그만큼 보이지 않고 폭력의 뿌리가 깊다는 반증이다. 비건(완전채식)운동은 문화와 사회의 공적담론에 대한 이의제기이다. 우리자신과 문화에 내재한 폭력과 미망에 대한 영적 각성이고 존재를 존재로 보는 것이다.

고용석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 
directcontact@hanmail.net

[1315호 / 2015년 10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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