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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불광 11월호 [사색의 뜰] 60년 전, 보르네오 섬에 뿌려진 하얀 가루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5-10-30 (금) 17:08 조회 : 616


[사색의 뜰] 60년 전, 보르네오 섬에 뿌려진 하얀 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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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세계보건기구WHO는 보르네오 섬에 말라리아를 퇴치하고자 DDT를 뿌린다. 모기는 박멸됐으나 이상하게도 민가의 지붕이 너덜너덜 떨어지기 시작한다. DDT로 인해 굼벵이를 먹고사는 말벌이 사라지자 굼벵이가 크게 번식, 이엉을 엮어 얹은 지붕을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진 정부는 양철판으로 지붕을 덮게 한다. 이번에는 주민들이 집단불면증에 시달린다. 열대지방의 집중호우가 양철지붕을 때리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DDT로 죽은 벌레를 먹은 뱀이 죽는 것이었다. 잇달아 그 뱀을 먹은 고양이도 죽는다. 먹이사슬을 올라갈 때마다 DDT가 농축되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사라지자 쥐들의 극성이 온 섬에 판친다. 쥐의 증가는 다른 전염병의 유행을 노출한다. WHO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놀랍게도 14,000마리의 고양이를 낙하산에 매달아 투하한다. 

| 현대 음식문화의 재앙들
자연생태계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실화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계이며 비선형적이다.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과 연결성을 알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상호의존성의 자각을 돕는 2가지 힌트가 존재한다. 하나는 음식과 같은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한다. 음식은 지구 전체의 경제・정치・생태적 질서와 투명한 의식을 연결한다. 음식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푸는 일종의 실마리와 같다. 음식을 따라 풀어 가면 어느덧 전체적 그림이 드러난다. 다른 하나는 불살생의 가르침이다. “네가 바라는 바를 상대에게 베풀라.”는 말이 있다. 사랑을 원하면 사랑을 베풀어야 하듯 풍요를 원하면 먼저 관대해져야 한다. 생명체에 가혹한 행위는 행위 그 자체에 의해 인간들에 온갖 고통을 초래한다.

2가지 힌트에서 보면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동물이건 식물이건 인간이 먹는 음식이 모두 영혼들이라는 사실이다. 이 영혼들은 몸이 죽는다고 죽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의 최대 고민은 그들이 복수하지 않도록 달래는 것이었다. 거기서 세계의 모든 신화가 탄생한다. 어쩌면 인간은 상호연관성을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생활로써 실행하고 있었다. 이런 고민 자체가 고대의 상형문자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고민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60년 간 음식과 식습관은 이전 만 년보다 더 큰 폭으로 변해왔다. 만 년의 느린 변화에 익숙한 몸과 유전자에게는 큰 충격이다. 

오늘날 음식문화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생명과 산업의 충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양상이 과도한 육류와 정제가공식품의 범람이다. 현재 동물성 식품은 미국・영국에서 전체 칼로리 섭취량의 26%를 차지한다. 한국은 1969년 3%에서 이제 20%를 넘고 있다. 반면에 두 나라의 식물성 자연식품 섭취율은 5% 미만이며, 우리나라도 채소과일 1일 권장섭취량을 모두 만족하는 경우는 단지 6.7%에 불과하다. 음식을 산업화한 결과 매년 17,000개의 새로운 식품이 시장에 등장한다. 소고기와 햄버거는 산업화의 대표음식이다. 현대사회의 상징인 합리성이 역설적으로 불합리성을 낳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맥도날드화’란 개념까지 나올 정도이다. 

두 번째 양상은 자연과 종의 다양성을 완전히 무시한 식단이다. 식용으로 3,000가지의 동・식물종이 널리 쓰여 왔는데 오늘날 기업농들은 쌀・밀・콩・옥수수 4종만을 재배한다. 가축과 과일 채소도 대부분 단일품종이 장악하고 있다. 저비용 대량생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단일품종은 그 품종에 천적인 전염병이 발생할 때, 음식 자체가 사라지거나 대규모 기아로 이어지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옛날에는 유기동물 중 인간이 1%이고 나머지가 야생이었으나 지금은 인간과 인간 관련동물이 98%이고 야생동물이 2%에 불과하다. 인간 관련동물의 대부분이 식용동물이다. 생물다양성은 동식물과 지구의 면역력이자 변화에 대한 복원력이다. 다양성 결핍은 신종플루 등 인수공통 전염병의 침범이 일어날 때, 지구의 생명시스템에 치명적인 위협으로 되돌아온다.

세 번째 양상은 칼로리를 얻는 대신 미량영양소는 포기한 식단이다. 1970년대 중반이후 세계의 식품정책은 싼 가격에 대량의 칼로리를 공급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비만이면서 영양부족이 흔한 이유이다. 대량생산에 기여한 화학농은 토양의 복잡함을 단지 질소・인・칼륨으로 환원한다. 그로 인해 예전에 1개의 사과가 갖던 철분을 얻으려면 이제 사과 3개를 먹어야 한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영양학과 의학에도 적용돼 사람을 하루에 철분 몇 g을 반드시 섭취해야하는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 다룬다. 


| 채식은 상호의존성의 자각이며 실천
특히 충격적인 것은 이런 식품체계와 동물성 음식을 둘러싼 거대한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다. 연간 공장식 축산으로 700억 마리의 동물이 처참하게 도살된다. 어류의 50%가 무자비한 공장식 양식의 사료로 소비되고, 해양생물의 20%가 공장식 어업으로 그물에 걸려 폐기된다. 세계 농지의 80%와 물의 70%가 축산용이다. 세계 식량의 40%가 가축사료로 투입되면서 10억 명은 굶어 죽어가는 반면, 20억 명은 너무 먹어 비만이고 이 중 절반이 만성질환으로 죽어간다. 그리고 만성질환을 치료하는 신약개발을 위해 연간 수억 마리의 동물들이 실험대상으로 희생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제위기는 물론 치명적 생태계파괴와 자원고갈을 초래하고 미래의 아이들과 생명들에게 무의식적 폭력과 고통을 부과한다. 뿌리는 대로 거둔다 하지 않았는가, 여기에 무슨 평화를 기대하겠는가!

또한 내면의 쳇바퀴도 간과할 수 없다. 음식은 사회적 통념을 받아들이고 복제 재생산하는 주요 통로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먹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성장한다. 하루 세 끼씩 동물의 살을 먹으며 자신도 모르게 생명체를 사물로 보고 상품으로 보는 훈련을 한다. 또한 특권의식, 지배의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동물은 하등하고 인간은 우월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갖게 된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인간을 올려놓듯 소수가 부와 자원의 대부분을 독점하는 약탈적 경제체제를 당연하게 생각한다. 또한 햄이나 치즈를 먹으면서 돼지의 삶, 소의 존재에 대한 연결과 호기심은 금기이다. 이렇듯 생명 자체와의 단절은 반복적 식사행위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타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길러내며, 황폐해진 생태계 그리고 후손에 끼치는 고통과 단절하는 데도 익숙해진다.  

무엇보다도 고기를 먹는 것은 본연의 생명에 대한 연민과 자비심을 짓뭉개고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일종의 집단적 죄의식을 형성하고, 이 집단적 죄의식은 우리가 먹는 폭력을 감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도록 조장한다. 지구적 생태계 파괴, 소비지상주의, 여성억압, 인종차별, 약물중독 등은 어떤 면에서 육식이 우리 내면에 만든 그림자의 외부적 투사이다. 

식품체계와 동물성 음식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죽음과 고통의 쳇바퀴는 우리 자신과 문화에 내재한 폭력과 미망이다. “오늘 저녁, 무얼 먹을까?”라는 물음은 이 거대한 고통과 죽음의 쳇바퀴에 대한 ‘알아차림’이며 생명의 선순환으로 전환하는 출발점이 된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결정적 관건이기도 하다. 생명체의 존속은 또 다른 생명체의 생명에 기댄다. 하지만 인간인 우리는 오직 ‘필요’한 만큼만의 폭력을 행해야 한다. 결코 탐욕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대과학도 생명과 의식이 우주의 기본 속성일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 환경운동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후, 산업화의 무한질주를 제한하는 규제 위주에서 근원적 차원의 생태 인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우주는 완전한 상호의존 체계이며, 만물은 하나하나 고유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우리 행동의 결과도 살아있는 우주에 공명해 윤리적 되울림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음식과 영성, 문화의 상관성에 대한 깊은 통찰은 고대 아힘사ahimsa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여 영적 선각자뿐만 아니라 미국 초월주의 진보적 지식인그룹에 의해 본격화된다. 대표적 인물이 에머슨과 소로우 등이다. 이들은 오늘날 생태주의와 시민운동의 선구자들이다.

우리는 생명 속에 깃든 영성과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존재이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 환경과 문화・정치・경제 등의 총체적 위기의 근본 원인도 바로 영성의 부족에 있다. 
영성은 상호의존성의 자각이다. 영성의 회복은 자비심을 갖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는 음식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삶을 바꾸려면 마음을 바꿔야 하고 마음을 바꾸려면 음식을 바꿔야 한다는 옛말이 있다. 비건(vegan, 완전채식)은 단지 이름일 뿐 사실상 상호의존성 자각의 한 표현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실천이다. 비건은 새로운 인류의 ‘생활방식’으로 전 세계에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다.                                                         


고용석
비건채식운동가. 1994년, 환경・시민・종교단체가 총망라된 국내 최초의 국제 채식 심포지엄 ‘채식이 지구를 살립니다’를 비롯해, 글로벌 세미나를 수차례 기획했다. 지구온난화비상협의회 대표와 식생활교육부산네트워크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국제채식연합IVU을 대표해 세계 NGO대회와 유엔회의 관련 활동에 참여했다. 2005년부터 생명사랑채식실천협회 대표로 활동하며 현재 한국채식문화원 공동대표를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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